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권상룡의 시문집이다. 안동출생으로 아버지는 한유(澣有)이며어머니는 풍양 조씨로 연(淵)의 딸이다. 큰아버지와 종형에게 수학하였다. 1735(영조 11)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738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승문원정자, 1746년 함경도사, 1753년 호조정랑 등을 역임한 뒤 1760년에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그 뒤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가후진교육에 전념하였다. 성리학에 밝았으며 도학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 문집은 1897(고종 32)년 8세손인기욱(奇旭)이 편집, 간행하였다. 시는 대체적으로 호방한 기상과 고아한 정취를 풍기고 있다. 「영무등(咏無燈)」은 등불 없는 캄캄한 방에서 정진하다가 갑자기 방안이 밝아지고정신이 맑아져 신비로운 경지에 이르렀음을 읊은 것으로 선사(禪師)의오도송(悟道頌)을 연상시킨다. 「공자동유음(孔子洞有吟)」은 “공자동”이라는 동명 (洞名)에서 시상이 떠올라 학문에 대한 열정과 공자를 사모하는 정을 읊은 것이다.
「속리산(俗離山)」․「수정봉(水晶峯)」․「복천사(福泉寺)」등은 모두 산수와 자연을 읊은 서경시 로서 웅건, 호방하면서도 형용이 섬세하여 그 표현기교가 뛰어난작품들이다. 서(書)의「답오상원문목(答吳尙遠問目)」에서는 『주역』과 『중용』의말을 인용하여 귀신의 덕(德)을 논변하고 하늘과 조상에 대하여절서(節序)에 따라 제사하는 이치 등을 설명하고 있다. 「여이정수(與李正叟)」는여러 편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학문하는 방법과 『대학』의 본말에 관해 의견을 피력한 내용이 있다. 「동계안서(洞契案序)」는마을에 친목계를 만들면서 그 취지와 목적 등을 설명한 것이다. 이밖에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쓴 기행문인「유금강내산 대략(遊金剛內山大略)」이 있다.